[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 인도 갠지스 리버크루즈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걸 촬영할 당시 안개 자욱한 강상의 이 풍경이. 다리가 없는 강변에선 이렇듯 나룻배로 양안을 오가는데 갠지스강의 하루는 늘 이 모습으로 평화롭게 시작된다. 바라나가르(인도서벵골주)에서 summer@donga.com
 
 

여행자는 둘로 나뉜다. 다시는 가지 않겠다는 이, 언젠가 다시 찾겠다는 이. 둘 다 일리 있는 반응이다. 혼돈에 가까운 무질서와 딱해 보이는 빈민, 허술하게 스러진 시가와 빈약한 사회 인프라, 그로 인한 불편감 불쾌감이 감당 못할 부담으로 다가와서다. 그럼에도 상당수는 심적 불편을 상쇄하고도 남을 매력에 빠져 영혼의 여행지(Soul Destination)로 삼는다. 흙탕 연못에서 핀 고아한 연꽃 모습으로 처연히 일상을 영위하는 그들이 성자(聖者)로 다가와서다. 그러니 누가 옳다 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무얼 보고 느끼고 얻느냐는 것일 뿐.  

‘상상을 초월하는 인도(Incredible India).’ 이건 인도 정부관광청의 슬로건이다. 나는 이보다 더 인도를 확연히 밝히는 표현을 찾지 못한다. 다시는 가지 않겠다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 반드시 되찾겠다며 지그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두루 정답인 기상천외 여행지란 점에서. 그렇다. 인도는 이렇듯 불가사의했다. 취재 전만 해도 나는 전자에 속했다. 부정적 견해에 경도돼 인도를 기피했다. 하지만 지금은 후자다. 카레 파우더처럼 복잡다단 흥미진진 기기묘묘한 감흥의 여운 덕분이다.

3억3000만 神들의 세계 

3억3000만의 신(神)을 불러낸 인도인. 벌써 3000년 이상 이 황당하고 신비한 힌두이즘세계에 매몰돼 있다. 13억 인구의 8할이 그렇다. 그래서일까. 그들에겐 종교라 불리지 않는다. 부모 품에 안기는 아기마냥 매사에 그 허다한 신을 그들은 수시로 껴안는다. 그게 종교라면 신은 숭배대상. 인도에선 그렇지 않다. 대화와 놀이 상대다. 친구면서 선생님이고 아버지면서 어머니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종교일 수도 있다. 그 가르침의 궁극이 가치의 내면화를 거쳐 사회규범과 이상이 되어 관습과 전통이 된다는 점에선.  

그런 인도인에게 이건 놀랄 일이 아니다. 우주중심에 신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있다는 것. 내겐 그렇게 비쳤다. 그 허다한 신은 모두 그들 자신의 투사(投射)다. 헤아릴 수 없이 복잡다단한 인간본성의 투영이다. 그리고 그거야말로 이렇듯 많고 다양한 신이 필요한 배경이다. 희로애락과 생사고락, 고통과 환희. 그걸 그들은 신과 나눈다. 더 나은 다음 생(生)을 기대하며. 힌두이즘에서 현생은 지난 생의 카르마(Karma·業)다. 그건 절대 바뀔 수 없다. 그래서 현생엔 어떤 기대도 없다. 카르마를 쌓고 윤회로부터 해방이란 해탈의 몽상 외에. 신은 이런 사유와 놀음에 충실한 상대면서 해결사. 그렇게 즐기는 가운데 팍팍한 현생은 한 편의 꿈으로 승화한다.

그 놀음의 주체, 신이 아니다. 자신이다. 스스로 절대불변 영원질서의 우주법칙(차크라·Chakra·법륜) 지배자로 군림한다. 인도 국기는 인도인의 그런 성정을 단박에 펼쳐준다. 한가운데 수레바퀴(차크라)가 그것. 스물네 개 바퀴살은 24시간을 상징하고 그게 지탱하는 원형바퀴 차크라는 영원순환의 우주법칙(다르마·Dharma)이다. 동시에 힌두이즘이 세상에 고하는 주문(呪文)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순환하는 우주법칙의 고결함이 삶에 늘 팽배하라는. 

꾸미지 않아도 수려하다 
나의 첫 인도여행은 이런 상상초월 ‘인크레더블’의 연속이었다. 선상 6박의 열흘 일정 ‘갠지스강 리버크루즈’부터가 그랬다. 지상 2박(콜카타 델리)도 지구촌 최고급호텔 오버로이(Oberoi)였고 가이드(정부공인 자격증 소지) 역시 13억 인구 중 6명뿐이라는 한국어 구사 현지인이었다. 기항지 투어의 현장도 들어온 것과는 달랐다. 리버크루즈에 오르지 않았다면 머리를 내젓는 다른 많은 인도여행자 축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느꼈을 만큼. 갠지스강변의 풍경은 소박한 아름다움의 점철이었고 그 대자연은 꾸밈없는 수려함으로 일관했다. 강안마을의 농민은 순박했고 고된 삶에도 찌들기는커녕 품위가 느껴졌다. 그들은 우릴 환영했고 눈과 눈으로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행복감도 가졌다. 현실초월의 힌두이즘 삶에 대한 감동의 결과다. 인도에 대한 애정은 게서 싹텄다.  

이번 갠지스 리버크루즈는 한국인(41명)만 승선한 전세여행이었다. 그래서 선상생활이 편안했다. 그 즐거움엔 음식도 한몫했다. 인도 여행길에 가장 극복하기 힘들다는 음식이 여기선 내내 즐거움이었다. 우리 입맛에 맞춰 낸 인도음식부터 중국식에 한식(김치찌개 매운닭볶음)까지 솜씨 만점의 현지조리팀은 훌륭하게 요리했다. 승무원 37명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리버크루즈 주요 고객이 유럽과 미국인이다 보니 시설설비는 물론이고 식음료·객실정비·손님응대에 안전관리까지 모든 서비스가 초대형 대양 크루즈 수준이었다.  

새벽 갑판 위의 요가교실 
배는 반짝반짝 닦인 티크목재 바닥으로 19세기 식민지인도의 영국 귀족 별장을 연상시킬 만큼 고전미가 넘쳤다. 객실공간도 상상외로 넓었고 식당과 라운지 모두 갠지스강에서 휴일을 보내기에 충분할 만큼 우아했다. 4층 갑판에선 매일 새벽 강상의 미풍을 느끼며 요가클래스가 진행됐다. 인공시설이라곤 집 몇 채와 마을뿐인 이곳. 그런 자연 속에서 자세를 잡다보니 그 호흡과 신체이완이 훨씬 부드러웠다. 우주가 일시 정지한 듯 고요와 침잠의 세상을 열어 나를 환희와 열반으로 이끄는 환상적인 느낌도 받았다. 그런 만큼 이 리버크루즈가 내겐 그 자체로 만트라(眞言·영적 물리적 변형을 일으킬 수 있는 진리의 말씀)가 됐다.  

이 갠지스 리버크루즈는 이제껏 우리에게 소개된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인도여행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이제껏 많은 이의 인도 여행이 고생으로 점철됐다. 제한된 비용과 무리한 일정의 단체여행과 예산절약형 배낭여행이라면 예견된 결과다. 물론 신체조건과 연령, 취향이 그걸 감당할 정도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고행길로 치닫는 건 당연하다. 갠지스 리버크루즈는 그런 현실에서 나온 마땅한 대안이다. 그건 우리뿐이 아니다.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갠지스강 리버크루즈는 그런 현실적 요구의 반영이다. 그리고 실제 경험해보니 훌륭한 선택이었다. 참가자의 후일담이 고생 대신 포만감 행복감으로 일관한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말, 여행에도 적용된다. 경제적 부담(590만 원)만 극복한다면 정신·육체적 고통의 감내 없이 인도의 매력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콜카타·뉴델리를 포함한 열흘 일정의 갠지스강 리버크루즈 체험기를 소개한다. 

갠지스강은 인더스강과 더불어 인류 고대문명의 발상지다. 발원지는 모두 인도북쪽 히말라야산맥. 인더스강은 티베트고원에서 흘러내려 히말라야를 관통, 파키스탄(인도서부)을 적시며 아라비아해로 남행한다. 반면 갠지스강은 히말라야의 빙하(인도)에서 발원, 동행하며 벵골저지대(중류)를 지나 방글라데시의 벵골만 하구에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며 바다로 유입된다. 두 강의 고대문명은 장벽 히말라야산맥으로 인한 몬순(장마)기후의 산물. 규칙적인 범람으로 형성된 충적평야의 옥토가 그것이다.

문명과 침략의 길 갠지스 
문명발상은 인더스강이 먼저(4000년 전)다. 하지만 지형변화로 물 흐름이 바뀌며 문명권은 동쪽 갠지스로 옮겨갔다. 당시 주역은 기원전 1500년경 청동기시대에 북에서 내려와 인도아대륙(亞大陸·지질지형학적 분류)의 인더스강 유역 토착 드라비다인(아프리카계 흑인)을 정복한 아리아(선조 유럽인)인. ‘인도(인더스)’ ‘힌두’는 아리아인의 산스크리트어 표기로 인더스의 본래 이름 ‘신두’에서 왔다. 갠지스강 유역에 정착한 아리아인은 흑인원주민과 통혼(결혼)을 막느라 인종차별정책을 펼쳤다. 그때 카스트의 최고계급 브라만(백인)이 생겼고 종교적 제의를 독점한 브라만은 그걸 도구로 힌두이즘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 벵골저지대 곡창의 풍요로운 삶을 기반으로 문명이 번창하며 계급은 더욱 세분화했다. 그게 지금 인도의 카스트(신분계급) 제도다.

이렇게 인도아대륙은 히말라야산맥 남쪽의 북부곡창지대 문명사회를 중심으로 번성했고 16세기엔 이슬람 무굴제국에 의해 거의 전국이 통일됐다.

하지만 그 고마운 강(갠지스)이 17세기엔 유럽 각국(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네덜란드 노르웨이)의 대륙침략 기반으로 이용됐다. 그리고 1858년엔 무굴제국을 패퇴시킨 영국동인도회사 군대에 의해 식민지(1858년)로 전락, 대륙은 190년의 암흑기에 들었다. 20세기전반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운동이 아니었다면 여태 독립(1947년)하지 못한 채 영연방(영국령 인도제국)국가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 당시 제국주의 영국은 갠지스강 하류의 내륙항 콜카타를 수탈거점으로 삼았다. 영국령인도제국(황제는 빅토리아 영국여왕)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곳엔 인도를 거덜 내고 인도인을 노예처럼 삼던 영국동인도회사(일제의 동양척식회사와 같은 식민지 수탈조직)의 본부도 있었다.  

콜카타를 관통하는 물길은 갠지스의 지류 중 하나인 후글리강. 본류까지는 500km나 되는데 여기서 갈라져 콜카타 하류 벵골만하구로 흘러드는 이 지류가 오히려 본류보다 더 유용해 문명은 이 강을 끼고 융성했다. 영국도 동인도회사가 본부를 대륙남부 마드라스에서 20세기 들어 콜카타로 옮긴 것도 그 때문. 그래서 갠지스강 리버크루즈의 거점도 콜카타다. 크루즈십은 여행 내내 자연풍광이 아름답고 힌두이즘과 이슬람사원 등 유적이 산재한 강안의 몇몇 도시와 농촌에 기항한다. 그중엔 비틀스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이 가담했고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증손자의 기부금으로 지어지는 국제크리슈나의식운동본부(마야푸르)와 세계최대 힌두사원(건축 중)도 있다. 인도가 영국독식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플라시전투(무굴제국과 프랑스식민지회사 패퇴) 현장은 배로 지나고 1952년까지 프랑스식민지였던 강변도시 찬데르나고르는 직접 찾는다.  

테라코타 부조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 

칼나의 프라타페슈와 힌두사원의 테라코타 장식 탑. 칼나(인도서벵골주)에서 summer@donga.com


기항지투어는 아침과 늦은 오후, 거동하기 좋은 때에 한두 시간 정도로 짧게 진행한다. 유적과 마을이 강안에서 멀지 않아서다. 인도의 시골인심은 넉넉했다. 사람들도 유순해 어디서든 환영받았다. 그들은 소박한 농가의 삶과 농민일상도 민낯으로 보여주었다. 그런 격의 없는 환대는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더욱 감동스러웠다. 그런 곳을 찾을 땐 대부분 릭샤(인력거)나 e릭샤(전기동력)를 이용했다. 특별히 기억되는 건 그 어떤 곳에서도 여타관광객을 볼 수 없었다는 점. 육로론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어서인데 그런 만큼 감흥도 컸다. 투어의 즐거움 중 하나는 전혀 몰랐던 힌두이즘 세상의 신에 관한 다양한 스토리. 힌두사원의 벽을 빼곡히 장식한 테라코타 부조마다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 유적은 예술적 감흥은 물론 호기심도 불러일으켜 우리를 힌두이즘 세계로 자연스레 이끌었다. 그리고 그거야말로 인도여행의 진수였다.

콜카타(인도서벵골주)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